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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36   조회수: 1349   작성일자: 2014/08/19 21:43:24  
    제목 스페인 역사 III
    작성자 관리자 (madridhanin@gmail.com)


제 1 공화국, 제 2 공화국 성립

이후 입헌군주제가 채택됨으로 이탈리아의 왕자인 아마데오 데 사보야가 1870년 왕위에 올랐으나 약 2년 뒤 물러나고 1873년 2월 제1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874년 12월 캄포스 장군과 리베라(1874-1885) 장군이 이사벨 2세의 아들인 알폰소 12세를(1874-1885) 추대하여 부르봉 왕가를 복귀하였으나 알폰소 12세는 유복자를 남기고 사망하자 왕비인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섭정을 하였으나, 16-17 세기에 시작된 스페인의 몰락은 이 기간에는 더욱 절정에 달하였다. 1898년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또 리코의 상실로 국민의 사기는 떨어졌고 국내 정치는 불안의 연속이다. 스페인의 정치적 혼란은 알폰소 13세(1902년-1931) 시기에 가증되었으며 노동자 계급, 교회,군부, 프리메이슨, 지방 자치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여러 세력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1923년 쿠데타로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혼란을 수습한 리베라 장군은 독재 정치를 펴다가 1920년 말 세계 경제 공황의 여파로 사임하였다. 그 후 1931년 치 선거에서 공화파가 승리하자 왕정을 폐지되고 제2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1936년 선거에서 좌파연합인 인민전선이 승리하여 마누엘 아사냐 수상을 중심으로 사회 개혁이 추진되었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총통

좌파 정권의 탄생과 개혁에 불안을 느낀 군부가 프랑코(1892-1975) 장군을 중심으로 쿠데타로 내전(1936-1939)을 일으킨다. 스페인 내전은 제2차 대전의 전초적 성격을 지닌 스페인 내전에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프랑코는 약 40년간군부 독재 정치를 펼친다. 파시즘 성향의 프랑코 정권은 국제 사회에 고립되어 심각한 경제공황을 면할 수 없게 되나 1953년 미국과 동맹 조약을 맺고 1955년 유엔에 가입하면서 외교적인 고립에 벗어나게 된다. 이후 1960년 이후부터는 경제 성장의 가속도를 추진하고 자유화 정책을 불러와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1968), 외형적이나마 언론 자유의 완화(1966), 국가원수와 내각의 분리(1973) 등이 실행되었다. 또한, 1969년 알폰소 13세의 손자 후안 까를로스(1938-)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프랑코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벌한 철권 군부 독재 정치를 시행했던 프랑코와 교회가 결부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했다.

좌파에 대한 비인간적인 행위로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던 프랑코에 대한 비판과 그의 업적은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스페인의 민주화

프랑코 사후 권력의 공백을 맞은 혼란 상황에서 후안 까를로스 1세 국왕은 1976년 계혁 파의 젊은 정치가 아돌포 수아레스(1932-)를 수상으로 임명하고 1978년 새로운 입헌 군주제 헌법을 제정하였다. 스페인의 민주화는 수구파의 완강한 저항을 받았고 1981년 2월 무장군인들이 국회를 점령하고 정부 각료들과 의원들을 볼모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국왕의 단호한 의지와 설득에 의해 쿠데타는 실패하여 최대 위기를 막았다.

1982년 “중도 민주 연합”이 패배하고 펠리페 곤살레스(1942-)의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정권을 잡게 된다. 스페인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 (1982)와 유럽공동체(1986)에 가입하고 중동 평화회담을(1991) 개최하는 등 국제 사회 이상을 확고하게 높이며 경제성장을 추진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1990년 권력형 비리와 부패사건에 연루하여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증가하자 1996년 총선에서 국민당의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1953-)로 정권 교체가 성립된다.

국민당은 스페인 경제의 원동력인 건설업과 부동산업을 적극 지원하여 활발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2000년 3월에 총선에는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2004년 국민당은 국민의 반전 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결과로, 총선을 사흘 앞두고 알카에다 이슬람 테러 조직이 일으킨 마드리드 아토차 역의 동시 다발 끔찍한 테러 사건(191명 사망, 1,700명 부상)으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가 이끄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에 패배당한다. 2011년 11월 조기 총선에서 국민당은 압승하여 9년 만에 재집권하여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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